한국소식
전통 한국 혼례 문화에는 신랑가족이 결혼식에 앞서 신부 가족에게 보내는 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 속에는 혼서, 비단, 그리고 패물이 들어있습니다. 이 물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혼서인데, 혼서는 신부의 이름과 결혼 목적을 표시하는 글로 일부종사를 의미하며 신부는 이를 평생 지니고 있어야 했고 죽을 때도 같이 묻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에게 함을 하나 보내셨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올바로 알아 더욱 믿고, 신뢰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시며 함을 보내셨습니다. 신앙 생활의 첫 발걸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바로 이 함으로 시작되는데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이 함을 믿음이라는 특별한 열쇠로 잠그셨고 믿음을 가지고 함을 여는 사람만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비단과 패물에 더불어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세한 혼서를 넣어 주셨는데, 이 혼서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이사야 62,5) 또,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호세아 2,21-22)
하느님의 첫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있어 성경은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당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신 이런 주 하느님의 사랑 고백서였습니다. 더불어,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 119,105) 라는 시편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안에서 삶의 지혜와 가르침, 방향을 찾았습니다.
유대인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시어 성경을 접하셨고 삶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변함 없는 하느님의 자비의 모습이 담긴 글을 읽고, 자신에 대해 예언된 글을 접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이 어떤 메시아가, 어떤 신랑이 되어야 하는지 묵상하며 하느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예언하던 신랑은 바로 예수님이었고 그분께서는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데에 있어 변덕이 심했던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이 상징하는 모든 인간의 불신의 대가를 당신의 십자가 제사로 직접 치르셨고 부활의 열쇠로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이가 하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교보문고에 들렸는데, 종교 관련 서적들 중 작년에 새로 출판된 「신부 이태석」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친필 자료와 여러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더해 고인의 삶을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낸 책이라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의해 삶의 변화를 실감한 사람들이 고인의 삶을 다시 기리고 더욱 알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꺼이 참여했을 것이고, 그들의 온기를 담은 책은 <울지마, 톤즈>처럼 많은 이들의 삶을 따스하게 해줄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도왔던 12명의 사도들과 주변의 몇몇 여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의 손길, 자비의 눈빛, 인간적 따스함을 체험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도 자신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는데, 이 글들이 바로 신약성경입니다. 그 중 4대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회고록, 사진첩, 전서, 각본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수 많은 성인, 성녀들도 성경을 통해 다가오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했고 교회 안팎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역사는 현재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십니다. 특히,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를 통해 우리와 만나고자 하십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신랑이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참된 모습을 새로이 되찾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삶의 활력을 얻는 것처럼, 신앙인은 예수님의 삶의 드라마를 마음으로 자주 보며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얼마나 자주 읽나요? 미사 때 얼마나 집중해서 성경말씀을 듣나요? 새로운 한 해를 맞아 하루에, 또는 일주일에 10-15분 만이라도 복음 말씀 안에 계신 예수님께 시간을 내어 드리면 어떨까요?
2016년에 개봉한, 해녀 할머니와 불량 손녀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계춘할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할머니께서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내가 니편 해줄테니 너는 너 하고픈 대로 다 하고 살아라. 할망, 모든 거 다 해줄 거여.” ‘믿는다는 것’은 삶의 모든 문제를 없애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고달플 수도 있는 하루하루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속삭여주고 싶으신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하늘의 혼인 잔치를 향해 희망차게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사도 20,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