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저는 지난 5월 7일에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같이 사제서품을 받은 새 사제들과 함께 5월 11일 수요일에 교황님의 일반알현에 참석하였고, 알현 후에는 새 사제들에게 교황님과 가까이에서 인사를 드리고 함께 사진을 찍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바티칸에서 미사 또는 일반알현에 참석해서 교황님을 멀리서 뵌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교황님을 직접 뵙게 되니 처음에는 긴장도 되었지만 교황님께서 저희들에게 농담을 던지시면서 긴장은 금방 풀어졌습니다. 무릎 통증 때문에 고생하시면서도 저희들에게 미소를 지으시고 한 사람씩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또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저희들을 친근하게 대해 주신 교황님께 대한 제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을 이태리어로 “Papa(파파)”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아빠”라는 뜻인데 교황님께서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자녀인 우리 신자들이 교황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적 아버지와 비교해보면 물론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도 있고, 육적 아버지가 자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반면 교황님의 경우 로마에 거주하시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신자들은 교황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교황님 방한 때 멀리서 뵈었거나 또는 로마에 성지순례 오셔서 교황님을 뵌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아마 소수일 것이고, 만남의 순간도 짧았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려면 함께 한 통의 소금을 나눠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어느 정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될 때 친구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대인관계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로마로 성지순례를 와서 교황님을 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황님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을 사랑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또 교황님께서 이끄시는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될까요?
우리 수도회는 5가지의 사랑을 중요시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 성모님에 대한 사랑, 교회와 교황님에 대한 사랑, 영혼들에 대한 사랑, 수도회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5가지 사랑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친구가 되기 위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즉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서, 성체, 십자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미사 때 또는 다른 시간에 성서를 읽으면서, 성체를 정성껏 모시고 성체조배를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예수 성심이 상징하는 그 분의 깊은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사랑을 받으면 돌려줘야 하듯,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면 돌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사랑하고 자주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대리자이신 교황님을 사랑하는 것, 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박해했을 때 예수님께서 “왜 내 교회를 박해하느냐?” 대신 “왜 나를 박해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인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앞에서 썼듯 교황님께서 우리의 영적 아버지이시고 우리들은 영적 자녀들이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의 영적 가족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 가족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에 대한 사랑은 어떤가요?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각자 성찰해 보라고 권하십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교회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스스로 교회 가족의 일원이라고 느끼십니까? 교회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이해해주는 공동체, 또 새로운 삶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되도록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은 선물이고 각 개인의 행위이지만, 이 믿음을 저희 가족인 교회와 함께 실천하도록 하느님께서 저희를 부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일반 알현, 2013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