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저는 올 초부터 매주 화요일 레늄 크리스티 기도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기도 학교에서는 복음 속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말처럼 세상의 일에 뒤쳐질까 매번 스마트 폰에 뉴스를 찾아다니는 저에게 매주 한 시간 만이라도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고 주님께로만 응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몬 신부님의 안내로 진행되는 묵상 기도에 조금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 달리 처음에는 침묵을 지키며 오분 여를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주님께 제 나름의 영적 텔레파시를 쏘아 대도 들리는 것은 저의 외침일 뿐이었습니다. 끙끙대면서도 그래도 놓지않고 꾸준히 기도 학교에 나온 이유는 그 무기력한 시간 속에 어느 날 제 머리 위로 슬쩍 느껴진 주님의 따뜻한 손길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을 진짜! 꼭! 제대로 만나보겠다는 열망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점차 복음 구절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마이크로 단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로 믿고,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던 저에게는 정말 귀한 경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성경 속 과거에 머물던 말씀이 종이 표면을 떠나 제 머리에 하나 둘씩 다가와 '아셀라야!' 하고 말을 거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요.
주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 말씀하시는 (산상 설교, 마태오 5-7장) 순간 저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해, 마음이 깨끗한 아셀라야! 너는 하느님을 볼 거야. 너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체험한 아이야, 그러니 주님의 용서를 신뢰하여 하느님께 돌아서면 돼. 나를 믿어. 너는 참으로 행복 할거야"
속 뜻이 이해가 잘 안되던 그 산상 설교 말씀이 온전히 저에게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저도 제게 말을 걸어주신 주님께 대답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도 주님을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아요.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저에겐 십자가 같고, 때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아요. 하지만, 이제 저를 찾아오신 주님을 모른다 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보고 싶어요. 잘 알지 못해 두려워하는 것들은 저에게 경험의 지혜로 주시고, 제가 더 이상 걱정과 번민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저는 두려워지면 그냥 도망가고 싶어지거든요!"
이렇게 주님과 둘만의 대화가 조금씩 시작될 봄 무렵 저에게 큰 용기를 낼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미국 관구에 한국 레늄 크리스티 대표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그 일이 제 몫이 아니라 여기고 있던 일이라 신부님의 '기도하며 결정해보라'는 말씀에 기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주님께서 저에게 백인 대장의 큰 믿음을 보여주시며 '아셀라야! 너도 이 믿음이 있어. 너의 힘과 노력이 아닌, 나를 신뢰하는 마음만 가지면 되는 거야' 하시는 말씀에 제가 '예' 라고 대답해 드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실 아직도 가끔은 어떻게 제가 그날 대답을 드릴 수 있었는지 신기합니다. 그 당시 제 마음은 온통 '아니오'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미국 회의에 가기로 결정하고 6개월 정도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저에게 매번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저는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 마음에 콕 박혀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살고 있는 온전한 '사람'이신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 무시 받고 저주 받은 사람들을 만나, 하나하나 손 대가며 애틋하고 짠한 마음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말 중 '군중이 그분을 따라..', '많은 군중을 보시고' 에 나타나는 돌아서면 사람들이 모여있고, 돌아서면 아픈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어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는 (마르 6.34) 주님의 아픈 심정이 저는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그 주님의 모습에서 세상 한복판에서 쉴 틈 없이 일하며 지내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름이 없음에 왠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일의 구도자가 되어 나의 삶에 주어진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예수님처럼 기도 할 수 있고, 밀도 있는 시간을 만들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감사와 기쁨이 생겼습니다.
저는 주님께 다시 여쭈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에게 찾아와 주셔서, 제가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어떻게 제 인생에도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마음의 가장 낮고 작은 것을 드려도 큰 기적을 만드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관구 회의가 한 달여 다가왔을 때 갑자기 긴장과 우울이 몰려왔습니다. 다시 제 힘으로만 용쓰며 일하려는 오래된 악습이 도지고 있었습니다. 관구 회의에 가서 배우고 느끼고 오겠다는 제 처음 모습은 사라지고, 오로지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저를 압도할 즈음, 하느님의 숨은 모습을 하고 있던 레늄 영성 가족들의 힘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후원금을 모으고, 만날 때마다 잘 하고 있다 격려해주고, 한글/영문 성경 엽서를 백여 장 만들어 관구에 모인 분들께 전하라 준비해주고, 좋은 말씀을 줄을 쳐서 보여주고, 선물을 준비해주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레늄 자매들의 지지에 '혼자서' 하고 있다는 외로운 착각에서 벗어나, 이런 넘치는 사랑을 '감사히 받을 수 있는 ' 태도와 수용의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관구 회의 가기 전 기도 학교에서 제가 묵상한 구절은 마태오 복음의 '매정한 종의 비유'(18,23-35)로 일만 달런트나 빚진 종의 모습이 나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변제할 수 없는 거대한 빚 앞에 '가엾은 마음이 들어' 사랑과 자비로 빚을 0원으로 탕감해 주시는 하늘 나라 임금님의 셈 법에 깊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저 적당한 법이 없으심에, 저도 조금이라도 주님의 모습을 따라하는 제자가 되어 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공동체에서 보여준 깊은 사랑 안에서 어렵지만 뜻 깊고 아름다운 관구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저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이 다시 떠오릅니다. 주님과 일대일로 눈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오롯이 저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 주님과의 사랑의 대화입니다. 앞으로도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증언하는 삶을 '함께' 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저의 '소명' 임을 깨달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